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3권(1987년 발간)
충청북도 영동(永同) 사람이다.
1919년 3월 30일 양산면(陽山面) 가곡리(柯谷里)에 사는 인천 이씨(仁川李氏)들이 주동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당시 그는 영동에서 무주(茂朱)에 이르는 도로공사 부역에 동원된 많은 군중과 합세하여 선두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외치고, 시위군중과 함께 학산면(鶴山面) 경찰주재소로 몰려가서 돌을 던지며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여 구속된 애국인사를 석방시켰다. 이에 일본 경찰은 시위군중의 위세에 눌려 태극기를 들고 나와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결국 일본 경찰이 증원되어 탄압이 가중되자 시위군중은 부득이 해산되었고, 그도 체포되었다. 이해 7월 28일 그는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형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수형인명부(1919. 7. 28 경성복심법원)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3권 9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