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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공자정보

독립유공자 정보
관리번호 1732
성명
한자 金翊東
이명 없음 성별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본적
주소
액자프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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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정보

공훈록
운동계열 3.1운동 포상년도 1990 훈격 애족장

공훈록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3권(1987년 발간)

경상남도 성주(星州) 사람이다.

1919년 3월 22일의 거창읍 장날을 이용하여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였다. 이곳의 독립만세운동은 3월 20일의 가조면 장기리(加祚面場基里) 장날을 이용하여 만세운동을 주동하였던 김병직(金秉直)·어명준(魚命俊) 등이 일본 헌병에게 구타당하여 반죽음 상태로 거창 일본군헌병대로 압송된 사실이 전해지면서부터 계획되었다.

이에 그들은 3월 21일 오문현(吳文鉉)·신병희(愼炳禧)·어명우(魚命佑)·어명철(魚命喆)·이병홍(李秉洪)·김 호(金濩) 등 6인을 추진위원으로 선출하여, 이날 가조면·가북면(加北面) 일대에 이 계획을 전달하였다.

그러나 이 사실이 사전에 누설되어 22일 아침 거창 주둔 일본군헌병분대가 주동인물을 체포하여 취조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그는 가조면·가북면 사람 3천여명과 함께 이날 오후 2시 30분경, 몽둥이를 가지고 장기리 만도정(晩嶋亭) 앞에서 대형 독립기를 세운 후, 주동인물의 석방을 요구하며 독립만세를 외치고 거창읍으로 시위행진하였다.

시위대열이 사포현(沙浦峴)에 이르렀을 때, 거창 일본군헌병대와 용산(龍山) 일본군 헌병분견대가 합세하여 진로를 차단하고 공포를 발사하며 해산을 명령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에 굴하지 않고 시위군중과 함께 함성을 지르며 헌병들을 향하여 돌진하였다. 사태의 위급함을 느낀 일본 헌병의 무차별 발포로 4명이 현장에서 순국하였으며, 많은 부상자가 발생하여 시위대열은 일단 해산하였다.

그러나 그후 일제의 검속 때 체포되었으며, 이해 6월 5일 부산(釜山)지방법원 거창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 혐의로 징역 3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신분장지문조회회보서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3권 346면
  • 수형인명부(성주군 수윤면장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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