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단(處斷) : 결단을 내려 처치하거나 처분함.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08년부터 1911년까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대동공보』와 『대양보』 등의 편집과 발행을 담당하였고, 안중근(安重根)과 함께 이토 히로부미 처단을 계획하였으며,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 블라디보스토크 지방회와 권업회(勸業會)에서 활동하였다.
1908년 2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최봉준(崔鳳俊) 등이 『해조신문(海朝新聞)』을 간행하자, 『해조신문』 아지미(芽芝味, adimi) 발매소를 담당하여 한인들에게 반포하였다. 같은 해 5월 26일 『해조신문』 발행이 중단되자, 이강(李剛)ㆍ차석보(車錫甫)ㆍ문창범(文昌範) 등 35인과 다시 신문을 발행하기 위해 자본을 모집하여 6월 『대동공보(大東共報)』를 간행하였다. 1909년 4월 『대동공보』 발행인이 되어 국내 『대한매일신보』의 임치정(林蚩正)과 서신을 교환하였다. 같은 해 9월 미주 국민회 산하 블라디보스토크지방회에서 평의원으로 선임되었다.
1909년 10월 대동공보사 사무실에서 이강ㆍ정재관(鄭在寬)ㆍ안중근(安重根)과 함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처단을 계획하였고, 이토 히로부미 처단 성공 후 의연금을 모집하여 안중근의 재판비를 지원하였다. 1910년 2월 안중근의 유족 구제를 목적으로 한 공동회(共同會)를 조직하였고, 4월에는 1월 중순 폐간된 『대동공보』를 다시 간행하면서 편집장 겸 발행인이 되었다.
1910년 8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일제의 한국 병탄을 반대하기 위해 '대한의 광복을 죽기로 맹세하고 성취한다'는 한국국민의회(일명 성명회) 선언서에 서명하였다. 1911년 6월 『대동공보』의 후신으로 『대양보(大洋報)』를 창간하여 편집 및 발행인이 되었고, 블라디보스토크 한인거류민회 회장과 민족운동단체인 권업회의 평의원으로 선출되어 활동하였다. 같은 해 9월에는 국민회 지방회 설립과 인가에 관련된 내용의 서신을 안창호(安昌浩)에게 보내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海朝新聞(1908. 2. 26, 2. 27, 2. 28, 2. 29, 3. 1, 3. 3, 3. 4, 3. 5, 3. 6, 3. 7, 3. 8, 3. 10, 3. 12, 3. 13, 3. 14, 3. 15, 3. 17, 3. 18, 3. 19, 3. 20, 3. 21, 5. 26)
- 共立新報(1908. 10. 21)
- 新韓民報(1909. 4. 14, 10. 27, 1910. 6. 1)
- 勸業新聞(1912. 12. 19)
- 獨立新聞(1920. 4. 8)
- 圖們江 對岸의 賊情(1909. 12. 7), 對岸暴徒의 近狀(1910. 4. 2) 暴徒에 關한 編冊
- 朝鮮人近況報告의 件(1911. 1. 21), 朝鮮人에 관한 情報 進達의 件(1910. 12. 28) 日本外交史料館資料(독립기념관 소장)
- 유진율이 이갑에게 보낸 편지(1911. 8. 23), 백원보가 안창호에게 보낸 편지(1911. 9. 16, 12. 21)(독립기념관 소장)
- 1월 13일 이후 블라디보스토크지방 조선인 동정(1911. 1. 28), 조선인의 동정에 관한 정보 진달의 건(1911. 2. 23), 開拓里 상황 보고의 건(1911. 3. 9), 3월 4일 이후 블라디보스토크지방 조선인의 동정(1911. 3. 17), 3월 17일 이후 블라디보스토크지방 조선인의 동정(1911. 3. 29), 과거 1개월간 당지 조선인의 상황 보고의 건(1911. 6. 1), 5월 17일 이후 블라디보스토크지방 조선인의 동정(1911. 6. 1), 5월 23일 이후 블라디보스토크지방 조선인 동정의 건(1911. 6. 6), 5월 30일 이후 블라디보스토크지방 조선인의 동정(1911. 6. 14), 6월 7일 이후 블라디보스토크지방 鮮人동정(1911. 6. 22)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西比利亞(2)
- 조선인 상황 보고(1911. 6. 23), 6월 13일 이후 浦潮斯德지방 조선인 동정(1911. 6. 28), 6월 20일 이후 浦潮斯德지방 鮮人 동정(1911. 7. 5), 조선인 근황보고(1911. 8. 19), 조선인 근황에 관한 정보 송부의 건(1911. 8. 27), 1911년 8월 16일 이후 浦潮斯德 지방 조선인 동정(1911. 8. 30), 1911년 8월 22일 이후 浦潮斯德지방 조선인 동정(1911. 9. 6), 9월 14일 이후 在浦鹽 排日鮮人의 동정(1911. 9. 27), 11월 1일 이후 浦潮斯德지방 조선인에 관한 정보(1911. 11. 17), 浦潮방면 在住鮮人 최근 정보(1912. 1. 19)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西比利亞(3)
- 露國革命이 조선인에게 미치는 영향(別冊)(1917. 10. 16)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西比利亞(6)
- 韓國獨立運動史資料(國史編纂委員會, 1976) 제6권(안중근편ⅰ) 191~203, 251~274, 287~292, 298~303, 365~389면, 제7권(안중근편ⅱ) 142, 212, 221~223, 227, 230, 241~247, 255, 263~264, 266, 279, 282, 284, 335, 339~340, 342, 388, 398~407, 410~413, 434, 450면, 제12권(의병편ⅴ) 651면, 제13권(의병편ⅵ) 181면, 제17권(의병편ⅹ) 576면, 제18권(의병편 ?) 417~418면, 제37권(해외언론운동편) 3, 30면
- 海外의 韓國獨立運動史料(ⅱ)(국가보훈처, 1991) 독일 외무성편(1) 353~357, 359면
- 統監府文書(國史編纂委員會, 1999) 제6권 174면, 제7권 235, 250~252, 257~261, 291~296, 326, 363, 372, 390, 406면, 제10권 217면
- 도산안창호전집(도산안창호선생기념사업회, 2000) 제5권 407, 413, 423, 434, 452, 481, 490면
- 高宗時代史(國史編纂委員會, 1962) 제6집 924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0) 제1권 661면, 제3권 769~770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