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함남 이원(利原) 사람이다.
1919년 향리에서 3·1운동에 참여한 후 만주 장백현(長白縣)으로 망명하여 대한독립군비단(大韓獨立軍備團) 장백지단 유일우(劉一優) 부대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그가 활동했던 대한독립군비단은 1919년 3월 만주지역에서 3·1운동이 전개된 후, 동년 5월경 함경남도 혜산진(惠山鎭) 대안(對岸) 장백현에서 함경남도 출신의 이희삼(李熙三)·이동백(李東白) 등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독립운동단체이다.
1919년 11월 1일경 이 단체의 주요 간부는 단장 이태걸(李泰杰), 부단장 김동준(金東俊), 총무장 김찬(金燦), 재무장 이동백, 경무부장 이광랍(李光拉), 참모장 서병호(徐丙鎬) 등이었다. 또한 대한독립군비단에서는 1920년 2월, 운동을 보다 활발히 전개하기 위하여 조직을 확대 개편하였는데 그 때 간부는 단장 이은향(李殷鄕), 부장(副長) 이태걸, 군사부장 이동백, 재무부장 윤덕보(尹德甫), 참모부장 김 찬, 경찰부장 정삼성(鄭三星), 문사(文事)부장 김종기(金宗基), 외교부장 조훈(趙勳), 소집부장 김정익(金鼎益), 공창부장 김진무(金振武) 등이었다.
한편 대한독립군비단에서는 지단 조직도 활발히 전개하였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1919년 11월 1일 조직된 장백현 17도구(道溝)의 장백지단이다. 아울러 국내에도 지단 조직을 확대하였는데, 그 조직망은 대개 중심인물들의 원적지인 함경남도 지역이었다. 대표적인 지단으로는 함경도 단천(端川)지단과 북청(北靑)지단을 들 수 있다. 강상진은 1921년 3월 3일 군비단에서 군대를 러시아로 이동시킬 때, 2번째 부대의 책임자로 러시아령 이만(현재명 달레네첸스크)으로 이동하여, 동년 7월 군비단이 고려혁명의용군대(高麗革命義勇軍隊)로 개편된 후 조직한 사관학교의 일원으로 고려혁명군사의회(高麗革命軍事議會)의 헌병대장으로 활동하였다. 1921년 12월부터는 러시아령에서 러시아 백군과의 전투에 참여하였으며, 1922년 러시아 내전이 끝난 후에는 1923년부터 3년 동안 동만주 지역에서 사회주의 운동을 전개하다 러시아로 돌아왔으며, 1927년부터는 밀산현(密山縣)에서 사회주의 활동을 계속하다가, 1930년 이입삼(李立三)노선이 비판당하자 블라디보스톡으로 다시 망명하였다. 그 후 그는 한때 블라디보스톡 사범대학에서 청강생으로 수학하였으며, 노동자, 신문사 채자공 등으로 일하다 1973년 5월 1일 작고하였다. 그의 묘소는 현재 모스크바에 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국외용의조선인명부(총독부경무국) 110면
- 독립군의 수기(국가보훈처) 17∼46면
- 서신(김화순, 1990. 7.) 내용 중 강상진 이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