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김승빈은 3·1운동 당시 1919년 3월 3일 평북 사천리지역의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이후 본격적인 독립운동을 위해 서간도 통화현(通化縣)으로 건너갔다. 1919년 4월부터 약 4개월간 통화현 쾌대모자(快大帽子)의 민족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다가 약 1년 반동안 독립군 무관학교인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의 교관으로 활동했다. 신흥무관학교는 신민회(新民會) 계통의 인사들이 건설한 서간도 독립군기지에 세워진 학교로 수많은 독립군 인재를 양성한 학교였다.
1920년 중반 김승빈은 북간도로 옮겨 홍범도(洪範圖) 부대에 가담해 소대장과 부대장으로 활동했다. 그가 북간도로 옮겨 한창 활동을 할 때 1920년 10월 약 2만 명에 달하는 일본군들이 서북간도를 침입해 독립군기지와 한인사회를 초토화시키는 간도참변을 일으켰다. 일본군 대부대를 맞아 독립군들은 청산리대첩(靑山里大捷)이라는 대승리를 이루기도 했으나 피전책을 택해 북만주를 거쳐 소련의 연해주로 이동했다. 김승빈도 1921년 1월 홍범도부대와 함께 이동해 사할린독립부대에 소속되었다.
1921년 5월 홍범도가 이끄는 독립군단이 까란다쉬빌리 부대로 들어가 제3연대 제3대대로 재조직되자 김승빈은 이 부대의 대대장에 임명되었다. 이후 홍범도 부대가 1922년 12월까지 이르쿠츠크, 이만 등으로 옮겨 다닐 때 김승빈도 함께 이동하며 사관학교 교관, 연대 부관 등으로 활동했다. 그러다 1922년 12월 연해주에 소비에트 정부가 수립되며 홍범도 부대가 해산되자 이후 한인학교의 교사로 활동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автобиография(자필이력서:1941. 3. 14)
- 고려혁명군 장교 신원조사표(ргва 러시아군사문서보관소) ф.1709, оп.1, д.5, лл.8-16
- 三一獨立運動(김승빈, 작성연대 미상)
- 軍備團에서(姜相震 手記:1967. 3. 29) 獨立軍의 手記(국가보훈처, 1995) 249면
- 만주한인민족운동사연구(박환) 48, 332면
- 만주 노령지역에서의 항일독립운동(미하일 박) 9면
- автобиография(자필이력서:1958. 6. 20)
- 고려인 제1여단 사관학교 장교 심리조사표(ргва(러시아군사문서보관소) ф.1709, оп.1, д.5, лл.24-24об
- 東亞日報(1923. 3. 29)
- 新韓民報(1923. 3. 29)
- 리인섭의 편지(1968. 3. 7), 김승빈의 편지(1970. 3. 2), 韓國獨立運動史資料集(洪範圖篇)(韓國精神文化硏究院, 1995) 61~64면, 87~105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2권 406면
- 소련한족사(김승화 저, 정태수 편역) 119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