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제주(濟州) 사람이다.
일찍이 국내에서 교직에 종사하며 민족교육을 실시하던 그는 독립운동에 뜻을 두고 1927년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리하여 일본 대판(大阪)에서 한국인 노동자들의 비참한 생활상을 목격하며 노동운동에 투신할 것을 결심한 그는 1927년 10월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在日本朝鮮勞動總同盟) 대판조선노동조합(大阪朝鮮勞動組合) 집행위원 및 동 노동조합의 북부지부 상임집행위원에 선임되었다. 이어 1928년 5월에는 중앙집행위원, 1929년 12월에는 동 관서지방협의회(關西地方協議會) 집행위원장 등에 취임하여 일본에서 한국인 노동자의 권익향상에 힘쓰는 한편, 일본제국주의의 탄압에 맞서 싸웠다.
1930년 4월 사회주의 부문운동 조직의 통합 움직임에 발맞추어 동 동맹 대판노동조합 북부지부를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 대판화학노동조합에 통합하고 5월에는 동 조합을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 일본화학산업 노동조합 대판지부로 개칭한 후 책임자에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그는 동년 5월부터 8월까지 노동대중에게 혁명의식과 항일투쟁을 고무하는 내용의 「뉴스」및 격문을 비롯하여 「제2무산자(無産者) 신문」등을 제작 배포하여 사회주의 의식함양과 반제투쟁을 고무 격려하였다.
한편 신간회(新幹會) 대판지회에도 참여하여 1929년 8월 개최된 동회의 확대간사회에서 검사위원장에 선임되기도 하였다.
그는 이와 같은 활동으로 인해 일경에 체포되어 1932년 4월 12일 대판공소원에서 징역 2년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1935년 5월 '일본내에 거주하는 조선인 민중의 생활개선과 문화적 향상을 촉진한다. 조선인 민중의 생활권 확립과 그 보호신장을 기한다'는 설립취지로 「민중시보(民衆時報)」를 창간하고 대표간사로 재일 한국인 노동자들의 권익향상에 힘썼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1932. 4. 12, 大阪控訴院)
- 犯罪人名簿
- 思想月報(高等法院, 1932. 5) 第2卷, 第2號 502∼506面
- 昭和特高彈壓史(明石博隆) 第6卷 146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別集 第3輯 498·530面
- 朝鮮日報(1929. 9. 1, 1931. 4. 2)
- 民衆時報(1935. 5)
- 濟州抗日獨立運動史(濟州道, 1996) 1025∼1039面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