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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공자정보

수형기록
관리번호 960470
성명
한자 金文準
이명 없음 성별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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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정보

수형기록
운동계열 일본방면 포상년도 2000 훈격 애족장
1927년 일본(日本) 대판(大阪)으로 건너가 1929년 신간회(新幹會) 대판지회(大阪支會) 검사위원장(檢事委員長)에 선임되었고 재일본(在日本) 조선노동총동맹(朝鮮勞動總同盟) 산하 대판조선노동조합(大阪朝鮮勞動組合)전협계(全協系)일본화학노조(日本化學勞組)대판지부(大阪支部) 책임자로서 반제격문(反帝檄文)을 살포하는 등 활동하다 체포되어 징역 2년 6월을 받았으며 출옥(出獄) 후 1935년 재일(在日) 한국인(韓國人)의 권익향상을 목적으로「민중시보(民衆時報)」를 창간하여 대표간사(代表幹事)로 활동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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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옥(出獄) : 형기를 마치고 감옥에서 석방되어 나옴.
  • 격문(檄文) : 1. 어떤 일을 여러 사람에게 알리어 부추기는 글. 2. 급히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각처로 보내는 글. 3. 군병을 모집하거나, 적군을 달래거나 꾸짖기 위한 글.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제주(濟州) 사람이다.

일찍이 국내에서 교직에 종사하며 민족교육을 실시하던 그는 독립운동에 뜻을 두고 1927년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리하여 일본 대판(大阪)에서 한국인 노동자들의 비참한 생활상을 목격하며 노동운동에 투신할 것을 결심한 그는 1927년 10월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在日本朝鮮勞動總同盟) 대판조선노동조합(大阪朝鮮勞動組合) 집행위원 및 동 노동조합의 북부지부 상임집행위원에 선임되었다. 이어 1928년 5월에는 중앙집행위원, 1929년 12월에는 동 관서지방협의회(關西地方協議會) 집행위원장 등에 취임하여 일본에서 한국인 노동자의 권익향상에 힘쓰는 한편, 일본제국주의의 탄압에 맞서 싸웠다.

1930년 4월 사회주의 부문운동 조직의 통합 움직임에 발맞추어 동 동맹 대판노동조합 북부지부를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 대판화학노동조합에 통합하고 5월에는 동 조합을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 일본화학산업 노동조합 대판지부로 개칭한 후 책임자에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그는 동년 5월부터 8월까지 노동대중에게 혁명의식과 항일투쟁을 고무하는 내용의 「뉴스」및 격문을 비롯하여 「제2무산자(無産者) 신문」등을 제작 배포하여 사회주의 의식함양과 반제투쟁을 고무 격려하였다.

한편 신간회(新幹會) 대판지회에도 참여하여 1929년 8월 개최된 동회의 확대간사회에서 검사위원장에 선임되기도 하였다.

그는 이와 같은 활동으로 인해 일경에 체포되어 1932년 4월 12일 대판공소원에서 징역 2년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1935년 5월 '일본내에 거주하는 조선인 민중의 생활개선과 문화적 향상을 촉진한다. 조선인 민중의 생활권 확립과 그 보호신장을 기한다'는 설립취지로 「민중시보(民衆時報)」를 창간하고 대표간사로 재일 한국인 노동자들의 권익향상에 힘썼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1932. 4. 12, 大阪控訴院)
  • 犯罪人名簿
  • 思想月報(高等法院, 1932. 5) 第2卷, 第2號 502∼506面
  • 昭和特高彈壓史(明石博隆) 第6卷 146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別集 第3輯 498·530面
  • 朝鮮日報(1929. 9. 1, 1931. 4. 2)
  • 民衆時報(1935. 5)
  • 濟州抗日獨立運動史(濟州道, 1996) 1025∼1039面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도움말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순번 성명 이명 출신지 관련사건
1 김문준 호: 목우(木牛) 전라남도 제주(濟州) 일본공산당 사건
본문
본관은 김해(金海)이고 호는 목우(木牛)이다. 1894년 2월 10일 전라남도 제주군(濟州郡) 신좌면(新左面) 조천리(朝天里)에서 아버지 김중진(金重珍)과 어머니 이애경의 아들로 태어났다. 1908년 대한협회(大韓協會) 제주지회 회원으로 가입하였고, 1910년 3월 사립 의신학교(義信學校)를 졸업하였다. 1912년 제주공립농림학교를 졸업하고, 그해 경기도 수원의 조선총독부농림학교(수원고등농림학교의 전신)에 입학하여 1915년 3월에 졸업하였다. 졸업 후 조선총독부 수원권업모범장에서 근무하다가 고향으로 돌아왔다. 1918년경부터 1920년대 초반까지 정의공립보통학교 등에서 교사로 재직하였고, 특히 3·1운동 이후에는 사설 야학교를 건립, 운영하면서 청소년의 민족의식 고취에 힘썼다. 일제 경찰로부터 민족교육자로 지목되어 활동이 자유롭지 못하자 1927년 7월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 오사카(大阪)에서 한국인 노동자들의 비참한 생활상을 목격하고 노동운동에 투신하였다. 1927년 10월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在日本朝鮮勞動總同盟, 이하 총동맹) 산하 오사카조선노동조합(大阪朝鮮勞動組合) 집행위원 및 같은 노동조합의 북부지부 상임집행위원에 선임되었다. 그해 12월 민족협동전선으로 조직된 신간회(新幹會) 오사카지회의 창립을 주도하였다. 1928년 5월에는 총동맹 중앙집행위원에 선출되었고, 7월 제주도 출신 소년들을 규합하여 오사카조선소년동맹을 조직하였으며, 8월 신간회 오사카지회의 확대간사회에서 검사위원장에 선임되었다. 1929년 4월 이후 일본 선박업자들의 횡포에 맞서 제주통항조합준비위원회(濟州通航組合準備委員會) 결성을 주도하여, 1930년 4월 동아통항조합(東亞通航組合)을 설립하고 마침내 11월 선박 교룡환(鮫龍丸)을 전세 내 취항시켰다. 1929년 12월 총동맹 관서지방협의회(關西地方協議會) 집행위원장 등에 취임하였고, 1930년 4월 사회주의 부문 운동 조직의 통합 움직임에 발맞추어 총동맹 오사카노동조합 북부지부를 해소하여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이하 전협) 오사카화학노동조합에 통합시켰다. 일본공산당 당원으로 활동하면서 같은 해 5월 오사카화학노동조합을 전협 일본화학산업 노동조합 오사카지부로 개칭한 후 위원장에 선임되었다. 이후 5월 하순경부터 8월경까지 오사카 시내에서 노동대중에게 혁명 의식과 항일 투쟁을 선동하는 내용의 「뉴스」및 격문 40~100부 및 「제2무산자(無産者) 신문」 20부 등을 제작 배포하여 사회주의 의식 함양과 반제투쟁을 고무 격려하였다. 1930년 8월 오사카 고무공장 파업을 주도하다가 경찰에 붙잡혀 1931년 3월 25일 오사카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3년 6개월 형을 선고받고 항소하여, 1932년 4월 12일 오사카공소원에서 징역 2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오사카 사카이(堺)형무소에서 수감되어 고초를 겪다가 폐결핵에 걸려 형의 만기가 거의 다 된 1934년 2월 21일 감형으로 석방되었다. 출감 후 잠시 요양하다가 다시 일본공산당 재건운동에 참가하였고, 혁명가구원회(革命家救援會) 등을 조직하여 한국인과 일본인 노동자의 연대를 도모하였다. 1935년 6월 오사카에 거주하는 한국인의 생존권 투쟁과 전국적 민족운동의 기관지로서 한글신문 『민중시보(民衆時報)』를 창간하고 대표간사로 취임하여 재일 한국인 노동자들의 권익 향상과 항일 반제투쟁에 진력하였다. 수감 중에 얻은 폐결핵이 악화되어 오사카 도네야마(刀根山)요양소에서 치료 중 1936년 5월 22일 사망하였다. 장례는 일본인 좌익단체와 합동으로 거행되었고, 일제의 방해 등 우여곡절 끝에 일본에서 화장된 유해는 1937년 3월 고향인 조천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2005년 대전 국립현충원으로 이장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묘소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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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구분 묘소명 소재지
국립묘지 대전현충원 대전광역시 유성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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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현충시설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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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현충시설 정보
순번 종류 시설명 소재지
1 애국선열 추모탑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2 사당 창열사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3 기념관 제주항일 기념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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