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평남 안주(安州) 사람이다.
미주 하와이 지방에서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와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 하와이지부 당원으로 활동하면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04년 하와이로 이주한 장금환은 한인사회의 발전에 힘을 기울이는 한편, 1909년 대한인국민회 하와이군도 국구유라지방회의 부회장과 하라학가 지방회 평의원을 역임했다.
대한인국민회는 1909년 공립협회(共立協會)와 합성협회(合成協會)가 발전적으로 통합한 국민회(國民會)가 1910년 5월 대동보국회(大同保國會)를 흡수 통합함으로써 탄생한 미주 한인사회의 대표적인 독립운동단체였다. 대한인국민회는 샌프란시스코에 본부를 두고 중앙총회 아래 북미·하와이·멕시코·시베리아·만주 등 다섯 곳에 지방 총회를 두었으며 다시 지방총회 아래 116개의 지방회가 조직되어 있었다.
그는 친일미국인 스티븐스를 처단했던 장인환(張仁煥)·전명운(田明雲)의사를 돕기 위한 운동에 적극 참가하면서 지원금 마련에 노력하였다. 이후 그의 독립운동 자금 의연활동은 1945년 광복을 맞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는 1940년「국민보(國民報)」에 게재한「금일 우리의 급선무」라는 제목의 논설에서 '우리의 대과업이 독립전쟁에 있으며, 조국 독립의 달성에 있음'을 강조하면서 민족의식을 고취하였다.
그는 1944년 한국독립당 하와이지부 당원으로 중국 중경의 독립운동단체와 연계하여 지원활동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9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新韓國報(1909. 3. 30, 5. 4, 6. 8, 1910. 5. 4, 5. 10)
- 義務金收納帳簿(1913. 5. 19, 7. 23)
- 國民會寄附金 帳簿(1934. 7. 1, 1935. 2. 1, 1935년, 1940년, 1941. 1. 1, 1942. 2. 22)
- 國民報(1914. 5. 2, 1937. 4. 1, 8. 11, 9. 20, 9. 22, 12. 15, 1938. 3. 9, 6. 1, 1942. 3. 25, 4. 8, 4. 29, 7. 17, 9. 9, 1943. 5. 5, 8. 11, 1944. 4. 12, 6. 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