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평남 평양(平壤) 사람이다.
김용성은 1912년 9월 미국 네브라스카주의 한인소년병학교를 제1회로 졸업하고 1941년 재미한족연합위원회(在美韓族聯合委員會)의 집행부 위원과 1944년 주미외교위원부 외교위원장 등으로 활약하며 미주지역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한인소년병학교는 1909년 6월 박용만(朴容萬)과 정한경(鄭翰景) 등이 네브라스카에서 독립군간부를 육성하여 만주·연해주지방에 파견, 무장항일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설립한 학교이다. 그는 이곳에서 주로 방학을 이용하여 낮에는 농장에서 일하고 야간에 군사교련과 국어·영어·한문·일본어·수학·역사·지지·이과·성서·병과 등을 3년간 배웠다.
그후 그는 1941년 4월 설립된 재미한족연합위원회의 집행부 위원으로 활동하며, 한인 국방군 편성계획에 참가하였다. 당시 재미한족연합위원회는 미군과 힘을 합하여 대일승전을 기약하고 한국독립에 대한 연합국의 인정을 받기 위하여 남가주 로스엔젤레스에 한인국방경위대를 편성한 것이다.
그런데 1942년 2월 한인국방경위대가 맹호군(猛虎軍)으로 개칭되며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사위원회의 인준을 거쳐 임시정부의 관할하에 있게 되자 그는 맹호군의 사령관으로 활동하며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여 임시정부를 지원하기도 하였다.
한편 그는『THE NEW KOREA』1943년 12월호에 기고를 통하여 카이로 선언에 따라 한국이 독립하게 될 것이나, 그 절차나 방법은 반드시 완전한 자유와 절대적인 독립이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그는 1944년 10월 미주와 하와이 각지 대표들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외교위원부 개조를 논의하기 위해 모인 대표회의에 참가하여 주미외교위원부 외교위원장으로 선임되어 이후 한국독립의 당위성을 미국 당국에 홍보하는 등 대미 외교활동을 전개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8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在美韓人50年史(金元容, 1959) 130·412·418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8卷 685·835·837·847·848面
- THE NEW KOREA(1943. 12. 9, 12. 16)
- 寫眞 (1909∼1910년 한인소년병학교 생도 시절)
- 新韓民報(1942. 4. 30, 6. 18, 11. 12, 1943. 3. 18, 7. 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