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7권(2022년 발간)
1898년경 서울에서 태어나, 7세 때인 1905년 5월 부모를 따라 멕시코 유카탄으로 이민을 갔다. 유카탄의 진성학교에 다녔으며, 대한인국민회 유카탄지방회의 외교원을 1922년 1월 사임하였다. 멕시코시티(墨京)에 가서 신학교에서 공부하다가 건강 문제로 다시 유카탄으로 돌아와, 1922년 2월 메리다지방회 외교원으로 임명되었다. 1927년 멕시코시티지방회 외교원 겸 학무원으로 선임되었다.
1931년 9월 일제가 만주를 침략하자 미주의 한인 단체들은 공동으로 대한민국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로 역량을 집중하자고 결의하였다. 멕시코시티의 한인자성단은 11월 1일 독립운동을 후원하기 위한 자금 지원을 결정하였고, 11월 12일 미주한인연합회(美洲韓人聯合會) 참가를 만장일치로 찬성하였다. 한종원은 매주 25전의 주례금을 납부하는 동맹자로 참여하였다. 미주의 묵경자성단을 비롯한 대한인국민회·나성한인공동회·중가주한인공동회 4개 단체가 공동으로 ‘미주한인연합회’를 조직하였다.
1939년 12월 메리다지방회 교육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1940년 3.1절 기념식에서 연설하였다. 1940년 9월 중국에서 충칭(重慶)에서 한국광복군(韓國光復軍)이 성립되자 메리다지방회에서는 축하식을 거행하였는데, 한종원은 스페인어 연설로 한국광복군의 성립에 대한 진상을 알렸다. 1941년 1월에도 메리다지방회 교육위원에 선임 되었으나 5월에 멕시코시티로 이주하였다.
1942년 7월 17일 재미한족연합위원회(在美韓族聯合委員會) 집행부에서는 한종원과 이순녀에게 멕시코정부와의 교섭을 위임하는 위임장을 발급하였다. 1942년 8월 29일 선전위원 겸 교섭위원인 한종원과 이순녀가 태극기를 게양하는 현기식을 진행하였다. 1942년 10월 멕시코시티 선전위원으로서 멕시코주재 중국 공사와 면담하였고, 멕시코 국무경과 외교부장을 방문하여 한인들의 안정보장에 관해 논의하였다.
1918년부터 1942년까지 의무금, 인구세, 광복군후원금, 독립금 등을 여러 차례에 걸쳐 납부하였다. 해방 후 한국외국어대학교 서반아어학과 교수로 활동하였다.
정부는 2021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신한민보(新韓民報)(1917. 4. 19, 1918. 8. 8, 1919. 2. 6, 1922. 1. 12, 2. 22, 1924. 5. 1, 1927. 3. 31, 1929. 7. 18, 11. 14, 1931. 12. 3, 1932. 3. 3, 5. 26, 1939. 10. 19, 12. 21, 1940. 3. 28, 11. 28, 12. 12, 12. 26, 1941. 1. 23, 5. 22, 5. 29, 10. 16, 1942. 1. 29, 2. 26, 5. 7, 6. 18, 7. 23, 10. 8, 10. 15, 11. 26, 12. 24)
- 동아일보(東亞日報)(1955. 12. 22)
- 조선일보(朝鮮日報)(1955. 6. 19, 1961. 11. 7)
- 미주국민회자료집(도산안창호선생기념사업회, 2005) 제5권 383면, 제9권 110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