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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형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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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한자 楊成春
이명 梁成春 성별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본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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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정보

수형기록
운동계열 노령방면 포상년도 2011 훈격 애족장
1907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개척리(開拓里) 대한인거류민부장으로서 공립신보 지원에 앞장섰고, 1908년에는 동지(同地) 거류민장으로서 한인 정착에 힘쓰는 한편 일본 밀정혐의자를 처단하였으며, 1909년 대동공보(大東共報) 사원 및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 블라디보스토크 지방회의 응접원으로 활동하였고, 이등박문(伊藤博文) 저격사건 당시 관련자로 지목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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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0권(2012년 발간)

양성춘은 1907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개척리(開拓里) 대한인거류민부장으로 공립신보(共立新報) 발간비를 지원하였다. 1908년에는 김춘성(金春成) 외 1명이 동지(同地)로 건너와 수일 숙박 후 노브키에프스크로 출발하려던 차에 부근 한인에게 거동 이상자로 붙잡혔다. 양성춘은 이들의 소지품을 조사하였는데 이사청(理事廳)에서 발급한 여권과 일본어로 꾸며진 서류 다발 등이 있었다. 이에 김춘성은 이들을 일본인 밀정으로 판단하고 처단하였다.

1909년 양성춘은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 블라디보스토크 지방회의 응접원으로 활동하였다. 이후 계동학교(啓東學校)에서 재류 한인 대회를 열고 한인거류민회(韓人居留民會)를 조직하여 러시아 관헌에 인가를 받았다. 한편 안중근의 이등박문(伊藤博文) 처단 의거의 관련자로 지목되기도 했다.

이처럼 양성춘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지역에서 한인사회 정착과 안정에 노력했고, 활발한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1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機密鮮 제4호, 營內 조선인 상황조사서 進達의 건(블라디보스토크 總領事代理:1914. 4. 28)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西比利亞(5)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별집 제1집 1169면
  • 共立新報(1907. 12. 20, 12. 27)
  • 海朝新聞(1908. 4. 10)
  • 新韓民報(1909. 2. 17, 1910. 6. 22)
  • 서북학회월보(1909. 1. 1) 제8호
  • 機密鮮 제5호, 安恭根이 기획하고 있는 寺內 總督 暗殺 風說云云에 관한 건(블라디보스토크總領事 : 1911. 2. 11)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西比利亞(2)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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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순번 성명 이명 출신지 관련사건
1 양성춘 - 평남 평양(平壤) 안중근 의거, ‘양성춘 사건’
본문
평안남도 평양(平壤)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910년 당시 36세인 것으로 보아 1875년생으로 추정된다. 일찍이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Владивосток)로 이주한 것으로 추정되나, 자료의 한계로 이주 시기는 확인할 수 없다.1907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의 한인 거류지인 개척리(開拓里)에 있던 한인거류민회 민장이 되었다. 그해 정순만(鄭淳萬)이 블라디보스토크로 망명해 오자 그와 의형제를 맺고 거류민회 총무 겸 서기로 임명하여 『해조신문』을 창간하게 하였다. 『해조신문』 폐간 이후 창간된 『대동공보』의 사원으로 일하였다.1908년에는 블라디보스토크에 침투한 일제 밀정 혐의자를 체포하여 처단하였다.1909년 개척리 계동학교에서 블라디보스토크 재류 한인대회를 열고 러시아정부로부터 한인거류민회가 인가를 받도록 하였다. 또한 안중근(安重根)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처단 의거에도 관계하였다.한편, 1905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공립협회가 조직되고, 기관지인 『공립신보』가 창간되자 1907년 공립신보사에 격려 편지와 지원금을 보내고 계동학교를 『공립신보』 지사로 인정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1909년 1월에 블라디보스토크에 공립협회 지회를 조직하고 응접원으로 임명되어 활동하였다. 그해 2월 공립협회가 협성협회와 통합하여 대한인국민회로 개편되자, 공립협회 블라디보스토크 지회를 대한인국민회 블라디보스토크 지방회로 개편하여 활동하였다.블라디보스토크 한인 사회 내에는 기호파와 서도파, 북도파 사이에 알력이 있었다. 1910년 1월 23일 블라디보스토크 한인거류민회 회의에서 정순만이 공금유용문제를 추궁하자, 공금유용은 사실무근이라며 정순만의 발언을 제지하고, 모두 일치단결하여 모국을 위해 힘쓰자고 호소하였다. 그날 밤 집으로 찾아온 정순만과 다투다가 오발 사고가 일어나 복부에 총을 맞고 3일 만인 1월 27일 사망하였다. 그 해 6월 연해주 한인들은 추도회를 열고 기념비 건립을 위한 모금을 추진하고 분묘를 수축하였다.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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