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일본에서 한국인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투쟁하다 폭력단에 의해 살해되었다.
강유홍은 평안도 출생으로 일본 동경(東京)에서 자유노동자가 되어 재일조선노총(在日朝鮮勞總), 관동자유노조(關東自由勞組),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全協] 토목건축노동조합의 강동지구(江東地區) 강동교분회(江東橋分會)에 소속되어 항일운동을 하였다. 그 후 전협 토건본부(土建本部) 상임위원이 되었고, 토건본부 지방 조직책으로 관동(關東), 북륙(北陸), 산리(山梨) 지방에 파견되어 각 지방 지부의 재건과 창립에 적극적으로 활약하였다.
1932년 4월 강유홍은 암수현(岩手縣) 기선군(氣仙郡) 시작촌(矢作村) 대선도선철도공사장(大船渡線鐵道工事場) 한인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전협 토건중앙으로부터 김범이(金凡伊)와 함께 파견되었다. 암수현의 작업장은 전협 토목건축노동조합의 지도하에 자유노동자가 동맹파업을 하고 있었다. 이 파업은 전협의 대표적 동맹파업이었는데, 1932년 4월 26일 각 반장(飯場) 및 한인 활동가 60여명, 일본인 4명이 참가하여 동맹파업준비위원회를 구성하였다. 파업 노동자들의 요구사항은 노동시간의 단축, 임금인상, 부상수당, 해고반대 등이었다.
강유홍은 4월 28일 업무 중지를 선언하고 현장에서 대회를 열어 동맹파업을 결의하였다. 한인 노동자들이 동맹파업을 단행하자 당황한 유전조(有田組)는 경찰, 소방대 등을 동원하여 파업을 진압하려고 하였다. 5월 2일부터 파업 진압이 시작되어 100여 명의 폭력단이 투입되었다. 강유홍은 동맹파업단의 철저한 방비를 선두에서 지휘하였다. 5월 4일 저녁 폭력단은 술을 마시고 파업을 진압하기 시작하였다. 이때 강유홍은 폭력단을 피하여 동지의 집으로 피신하였는데 폭력단이 쫓아와 그들이 휘두른 몽둥이에 머리를 맞아 중상을 입고 또 다른 동지의 집으로 피신하였다. 폭력단은 다시 쫓아와 중상을 입은 그를 구타하여 학살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조선인 강제연행의 기록(朴慶植) 244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별집 제3집 418면
- 한국사회주의운동인명사전(창작과비평사, 1996) 15, 16면
- 朝鮮獨立運動(金正明, 1993) ⅳ 228면
- 近代日本社會運動史人物大事典(同 編纂委員會, 1997) 2권 542~543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