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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공자정보

수형기록
관리번호 8543
성명
한자 朴潤玉
이명 없음 성별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본적
액자프레임

포상정보

수형기록
운동계열 국내항일 포상년도 1990 훈격 애국장
1936년 이후 비밀결사인 일맥회 및 열혈회(熱血會)를 조직하고 주동적 활동으로 민족항일운동을 계속(繼續)하여 오다 동경유학때 체포(逮捕)되어 수형(受刑)받은 사실은 학생민족독립운동상(學生民族獨立運動上) 지대한 영향을 끼친 공적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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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6권(1988년 발간)

평남 대동(大同) 사람이다.

평양의 숭인(崇仁)상업학교 재학중인 1936년 6월에 동교생 김현주(金顯周)·김덕윤(金德潤)등과 함께 농민의 계몽지도 및 민족의식의 고양을 목적한 항일결사 일맥회(一麥會)를 조직하였다.

그런데 동 조직의 활동이 부진함에 따라 이들은 보다 강력한 결사를 조직할 것을 뜻하고 1937년 2월에 동지 지광호(池光浩)의 집에서 비밀결사 열혈회(熱血會)를 결성하였다. 이때 그는 동회의 회장을 맡았다.

동회는 "조선민족 영원의 복지를 위해 조선독립을 기하다"란 회칙을 정하고 그 행동방략으로는 농민대중의 지도를 통한 민족의식의 배양과 농업기술 및 경영을 지도하여 경제적 향상을 도모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들은 회원간의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각자의 성명대신 한글문자 한자씩을 암호로 정하였으며, 또 매년 3월 1일, 8월 29일을 열혈회의 기념일로 정하고 이날에는 조국독립을 위한 기도 및 단식을 행하여 항일정신을 기리기로 했다.

그는 1938년 3월에 동교를 졸업한 후 일본으로 건너가, 동년 4월에 동경 소재 청산학원 신학부 예과에 입학하였다. 그리고 그와 함께 같은 목적으로 도일했던 김덕윤·김동순(金東舜) 등 열혈회 회원들과 계속 모임을 가지며 동회의 사업을 추진하는데 힘을 쏟았다.

그런데 이러한 활동이 일경에 발각됨으로써 그는 1939년 11월에 붙잡혔다. 붙잡힌 후 그는 2년 동안 미결수의 상태로 있다가 1941년 11월에 1심에서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항소하여 2심에서 징역 4년·집행유예 5년형을 받았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80년 건국포장)을 수여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3권 1077·1208·1209·1272·1273·1274·1275면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420면
  •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 12권 495·496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3권 730·731·732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별집 3권 305·308·309·310·685면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도움말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순번 성명 이명 출신지 관련사건
1 박윤옥 창씨명 : 밀목윤옥(密木潤玉) 평남 대동(大同) 일맥회, 열혈회
본문
1915년 12월 9일 평안남도 대동군(大同郡) 고평면(古平面) 금천리(金泉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밀양(密陽)이고, 일제가 창씨개명을 강요하자 밀목윤옥(密木潤玉)을 사용하였다. 중류 가정에서 성장하였고, 유년기에 기독교에 입교하였다. 신흥학교(新興學校)를 거쳐 1933년 4월 평양 숭인상업학교(崇仁商業學校)에 입학하였다.1936년 동급생들과 함께 한국의 독립을 목표로 하는 비밀결사를 결성하였다. 숭인상업학교에 재학하는 동안 흥사단(興士團)과 수양동우회(修養同友會)에서 활동하던 교장 김항복(金恒福)과 교사 조명식(趙明植)의 영향을 받아 독립사상을 가지게 되었다. 1936년 6월 13일 동급생 연광용(延光榕)의 주도 하에 평양의 능라도(綾羅島)에서 일맥회(一麥會)라는 결사를 결성하였다. 그러나 이 단체는 연광용의 소극적 태도로 인해 얼마 지나지 않아 해산되었다.1937년 3월 하굣길에 동급생들에게 “조선 민족은 과거 우수한 국가를 가지고 있었는데, 한일병합에 의해 나라를 잃고 말았으니 나라 없는 민족에게 행복이 없는 것은 당연한 도리인 바, 조선 민족의 행복을 위해 우리 세 사람이 결사를 만들어 단결력을 통해 조선독립운동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평소 뜻을 같이하던 동급생 지광호(池光浩)·김덕윤(金德潤)이 찬성하였다.1937년 4월 평양 상수구리(上水口里)에 있는 지광호의 집에서 지광호·김덕윤·김희만金熙萬)과 함께 비밀결사 열혈회(熱血會)를 조직하였다. 이 자리에서 회장으로 선출되어 단체의 목적을 대한독립으로 하고, 농촌의 개발과 농민의 계몽을 통해 농민의 민족의식을 앙양함으로써 독립의 기초를 마련한다는 강령을 수립하였다.열혈회 설립 후 일제의 감시를 피해 동급생을 중심으로 동지 모집을 추진하여 10월 17일 평양 목단대(牧丹台)에서 재차 회합하고, 최병무(崔秉武)와 김현주(金顯周)를 새 회원으로 가입시켰다. 11월 23일에는 평양 하수구리(下水口里)에 있는 최병무의 집에서 재차 임원을 선출하고 회비 50전씩을 징수하였으며, 3월 3일과 8월 29일을 기념일로 정하여 독립기원 묵도(默禱)와 단식(斷食)을 실시하기로 결의하였다.1938년 1월 15일 이낙인(李洛仁)과 김동순(金東舜)을 새로운 회원으로 가입시켰다. 3월 31일 졸업을 앞두고 다른 7인의 열혈회원과 함께 농민 지도를 위한 정신적·기술적 지도력 확보를 위해 상급학교에 진학하기로 결의하였다. 이를 통해 지식을 축적하여 10년 뒤 평양 근처에 농장을 건설하고 농촌 청년을 교육하여 독립운동을 개시한다는 계획을 수립하였다.1938년 4월에는 일본 도쿄(東京) 소재 아오야마학원(靑山學院) 신학부 예과에 진학하였다. 마찬가지로 일본 유학을 선택한 김덕윤·김희만·최병무 등과 함께 도쿄 내 한국 학생들을 규합하고, 독립자금을 모집하고자 하였다. 1939년 7월 서울을 방문하여 지광호·김현주와 열혈회의 하계수양회(夏季修養會)를 계획하기도 하였다.1939년 보성전문학교(普成專門學校) 내 학생 공산주의 모임을 감시하던 종로경찰서의 고등경찰이 해당 모임의 구성원인 김정필(金鼎弼)을 붙잡으면서 열혈회의 활동이 발각되었다. 일제 경찰은 김정필과 같은 모임에 속해 있던 지광호를 조사하고 가택을 수색하여, 열혈회 활동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였다. 한편 일본 내에서 회합하던 열혈회원의 거동을 수상히 여겨 감시하던 일본의 고등경찰에 1939년 11월 28일 붙잡혔다. 미결수 상태로 있다가, 1940년 8월 2일 도쿄지방재판소로 송치되어 일본에서 재판을 받게 되었다.1941년 11월 27일 도쿄지방재판소 예심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정식재판에 회부되었다. 1942년 5월 16일 도쿄지방재판소에서 열혈회의 지도자로 지목되어 징역 5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여 2심에서 징역 4년, 집행유예 5년을 받고 풀려났다.광복 이후 1·4후퇴 때 월남하여 교육 사업 등에 종사하였다.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80년 건국포장)을 수여하였다.

묘소정보

도움말
묘소정보 1
묘소구분 소재지
국내산재 세종특별자치시 장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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