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체(被逮) : 남에게 붙잡힘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4권(1987년 발간)
평남 용강(龍岡) 사람이다.
1905년 을사조약이 늑결되자 비통함을 이기지 못하고 노령(露領) 연해주(沿海州) '니코리스크'로 망명하여 최재형(崔在亨) 등과 함께 독립운동에 헌신하였다. 특히 그는 자신의 자산을 모두 독립운동에 바치는 한편 '니코리스크' 재류한인민단(在留韓人民團)의 초대단장으로 활약하였다.
1919년 5월 5일의 일본정부특파원 국지의랑(菊池義郞)의 보고에 의하면 그는 재노령국민회의 상설위원으로 일하였다고 한다. 또한 동년 9월 '니코리스크' 지방의 부락에 전염병이 유행하자 엄주필(嚴柱弼) 등과 함께 임시위생회(臨時衛生會)를 조직하여 동포의 보건에 힘을 기울이는 한편 일본군 수비대를 공격하려고 엄주필·최재형 등과 사전준비를 하기도 하였다.
또한 해조신문(海朝新聞)의 발간에 재정상 후원을 담당하여 민족 사상 고취에 진력하기도 하였으며, 블라디보스톡에서 노인단(老人團) 조직에 참여하여 강우규(姜宇奎)의사의 재등실(齋藤實) 총독 제거 계획을 돕기도 하였다.
1920년 4월에는 두만강을 건너 국내에 진공(進攻)할 목적으로 혼춘(琿春) 간도(間島)를 경유하여 연해주에서 독립군을 모집하였으며, 이에 따라 허자일(許自逸)은 동년 4울 8일 대원 100여명과 함께 기관총 2정 등으로 무장하고 왕청현 합수평(汪淸縣合水坪)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1920년 4월 일본군이 시베리아에 출병하여 블라디보스톡 등지에서 러시아 공산군과 싸우는 한편, 항일 독립운동자들을 모두 체포하였는데 이때 그는 한인독립운동가의 거두(巨頭)로 지목되어 최재형·엄주필 등과 함께 재판도 받지 못하고 사살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77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1권 분책 379·380·417·418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5권 411면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64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3권 482·494·495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1권 634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3권 769·770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