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규합(糾合) : 어떤 일을 꾸미려고 세력이나 사람을 모음.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5권(1988년 발간)
1914년 보성(普成)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미주 하와이로 망명하여, 대한독립단에 가입, 박용만(朴容萬) 단장의 비서 겸 재무담당의 직책을 맡아 활동하였다.
1928년 박용만이 북경(北京)에서 암살된 뒤에는, 이승만(李承晩)이 조직한 대한인동지회(大韓人同志會)에 가입하여 외교활동 및 독립운동 자금 조달에 전념하였다. 한편으로는 태평양주보(太平洋週報)를 창간하여 그 주필로서 독립정신을 고취하였으며, 상해의 임시정부를 지원하였다.
1934년 4월 18일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미제2행서(駐美第二行署)의 재무위원에 임명되어 하와이에서 인구세(人口稅), 애국의연금(愛國義捐金) 등을 모금하여 임시정부를 뒷받침하였으며, 1936년 문인화(文寅華)에게 재무위원을 인계할 때까지 하와이를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1937년에 북경(北京) 노구교(蘆溝橋)의 충돌로 중일전(中日戰)이 발생하게 되자 임시정부는 강소성 진강시(江蘇省 鎭江市)로 이전하고, 대일전에 총력을 집중하기 위하여 한국독립당, 한국국민당, 조선혁명당을 비롯하여 미주(美洲)에 있는 대한독립단, 동지회, 국민회, 애국부인회, 단합회, 애국단 등을 연합하여 한국광복진선(韓國光復陣線)을 결성하게 되었는데 그는 이승만과 함께 동지회 대표로 이에 참여하여 선전사업에 주력하였다.
1941년 4월 6일에는 민족대단결, 독립전선 역량 집중, 광복대업 촉성 등을 목적으로 해외한족대회준비회(海外韓族大會準備會)가 결성되어, 동년 4월 20일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해외한족대회가 개최됨에 그는 안현경(安顯景)·도진호(都振鎬)와 함께 동지회중앙부(同志會中央部) 대표로 참가하였으며, 안원규(安元奎)·차신호(車信浩) 등과 호놀룰루에 자리잡은 재미한족연합위원회(在美韓族聯合委員會)의 의사부(議事部) 위원으로 선출되어 활동하였다. 동위원회의 집행부는 편의상 로스앤젤레스에 두게 되었다.
1943년 8월 19일에는 임시정부 국무위원회에서 그를 주미외교위원부(駐美外交委員部)위원으로 임명하여, 워싱턴에 주재하며 대미(對美) 외교활동과 독립금 모금을 계속하도록 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349 370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234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2권 509 560면
-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 12권 666 671 672면
-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 13권 530면
- 한국민족운동사료(중국편)(국회도서관) 812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4권 634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6권 148면
- 임시정부의정원문서(국회도서관) 733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