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6권(2006년 발간)
그는 어려서 한국 전통의 서당에서 한학을 배우고, 조선인 소학교를 마친 뒤, 블라디보스토크 중등학교를 졸업했다.
1905년 러시아혁명에 참가한 바 있는 그는 1910년 8월 일본의 한국 강점에 항의하여 성명회(聲明會)가 발표한 선언에 서명하는 등의 항일투쟁을 전개했다.
1912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발간한 러시아신문『달료까야오끄라이나[邊境]』서울 주재 특파원으로 근무하던 중 일제의 조선침략정책 비판 기사를 쓰다가 강제 추방당했다.
1916년 블라디보스토크의 신한촌(新韓村) 한민학교(韓民學校) 교사로 재직하면서 민족의식 고취에 힘을 쏟았다. 그리고 1917년 5월 니콜리스크·우수리스크에서 전로한족대표자회(全露韓族代表者會)가 열릴 때 참가했으며,『청구신보』편집인으로 활동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만세운동을 적극 지지·옹호하는 글을 다수 발표하는 한편「기미독립선언서」를 러시아로 번역하여 3·1운동을 알리는데 노력했다.
1919년 4월 고려공산당(高麗共産黨, 이르쿠츠크파)을 조직했으며, 동년 11월에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김좌두(金佐斗)·김규만(金奎冕) 등과 독립단(獨立團)을 조직했다. 1920년 3월 대한국민의회(大韓國民議會) 부의장으로 선출된 후 5월 중국 상해로 파견되어 활동했다.
1920년 11월 상해에서『공산(共産)』, 1921년에는『신생활(新生活)』등의 잡지를 발행했으며, 동년 5월 대한민국임시정부 학무총장으로 활동했다.
1921년 5월 12일 국민대표기성회(國民代表期成會)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9월 19일 상해민단(上海民團)의 의사원(議事員)개선 때 본구(本區)에서 선출되었다.
1922년 초에는 고려공산당으로 형성된 무장군대에 참가하였고, 동년 7월 시사책진회(時事策進會)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그 뒤 연해주로 활동 무대를 옮긴 그는 1927년 1월 블라디보스토크현(浦鹽縣) 집행위원회 고려부 수석위원으로『고려농민(高麗農民)과 당사업(黨事業)의 개황(槪況)』이라는 소책자를 발간하는 등 고려인(한인)의 권익을 위해 힘썼다.
연해주소비에트 집행위원으로 활동하던 그는 1929년 소련공산당에서 제명된 후 소련 경찰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다가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在浦鹽露國新聞의 通信員(鮮人) 京城派遣의 件(朝憲機 第2264號, 1911. 10. 10),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西比利亞(3)
- 東亞日報(1922. 6. 19·6. 23)
- 韓國民族運動年鑑(東文社, 1946) 167면
- 高等警察要史(慶尙北道警察部, 1934)
- 騎驢隨筆(宋相燾, 1955) 243·245·247면
- 朝鮮獨立運動(金正明, 1966) 제2권 144·148∼149·430·440·447·452·471면,
- 朝鮮獨立運動(金正明, 1966) 제3권 456·474·487·494면
- 現代史資料(姜德相, 1971) 제27권 167면
- 韓國民族運動史料(국회도서관, 1976) 中國篇, 275·289∼290·330·338·354·356∼357·363·500면
- 日帝侵略下韓國三十六年史(國史編纂委員會) 제4권 469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5권 418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