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3권(1996년 발간)
평남 순천(順川) 사람이다.
미국에 유학가서 공부하던 중, 미국이 세계 제1차대전에 참전함에 따라 자원 입대하여 제1차대전에 출전(出戰)하였다. 그 후 1919년 6월 프랑스로 귀환한 그는 이승만(李承晩)이 설립한 구미주차한국위원회(歐美駐箚韓國委員會)의 원동지역(遠東地域) 대표 김규식(金奎植)이 프랑스 베르사이유에서 개최되는 평화회의(平和會議)에 참석하고자 파리로 오자, 김복(金復) 등과 함께 대표단의 사무를 협조하는 동시에 김규식의 서기장(書記長)으로 활약하면서 한국의 독립 선전활동에 종사하였다.
1920년 1월 프랑스 파리에 주재하는 한국선전단(韓國宣傳團) 선전국장으로 불문(佛文) 잡지를 창간하여 한국의 독립을 세계 여러 나라에 호소하는 한편, 파리대학 교수인 우락을 초청하여 인권옹호회(人權擁護會)를 조직하고 지리학회장(地理學會場)에서 「원동(遠東) 한·중(韓中) 화평(和平)이 수(受)하는 압박(壓迫)」이란 문제로 강연회를 개최하는 등 언론을 통해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였다. 동년 10월 영국 런던에서 멕켄시와 윌리암스가 발기하여 한국친구회(韓國親舊會)를 조직하자, 참석하여 활동하였다.
1921년 4월 대한민국임시정부 외무부 주차영국런던위원(駐箚英國倫敦委員)으로 임명된 그는 『영일동맹(英日同盟)과 한국』이란 서적을 편집하여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된 것이 제국주의 열강들의 식민지 분할정책에서 비롯된 것임을 비판하였다. 또한 동년 5월 파리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통신부 사업의 일환으로 한국친우회(韓國親友會)를 조직하여 한국의 외교사업을 후원하는 한편, 동년 7월 대한민국임시정부 외교부 런던주재 외교위원 및 구미위원부(歐美委員部)에서 활약하다가 1923년 미국 뉴욕에서 심장병으로 서거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조선민족운동년감 134·157면
- 재미한인50년사(김원용) 369·375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8집 814·818면
- 한국민족운동사료(중국편)(국회도서관) 188·192·343면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408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310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