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3권(1996년 발간)
평북 사람이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나 1906년 부모님이 하와이 사탕농장 노동자로 응모하여 이민함에 따라 함께 하와이로 건너왔다. 그 후 미 본토로 건너와 미국인에게 입양(入養)되어 정식교육을 받았으며, 고학으로 미시건대학 정치학과에 입학하여 동양인으로는 최초로 전미국대학웅변협회 회장직을 맡는 등 놀라운 사회적 활동력을 보였다. 대학 졸업 후 하와이에 돌아온 그는 자동차 도장업을 시작하여 상당한 수익을 얻는 등 한국인 사이에 장래있는 청년으로 촉망을 받고 있었다. 그 후 1931년 4월 하와이 가와이섬에서 현순(玄楯) 등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후원을 목적으로 단합회(團合會)를 조직하자 이에 가입하여 활동하는 한편, 1937년 7월 중일전쟁이 발발한 것을 기회로 무장투쟁을 강화하기 위하여 미주 등지에 산재한 하와이 대한인국민회 등 6개 단체와 연합하여 한국광복진선(韓國光復陣線)을 결성하고 진강(鎭江)에 위치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외곽단체로서 활동하면서 8년간 적극적으로 임시정부를 후원하였다.
1939년 중국의 한인독립운동단체인 광복진선(光復陣線)과 민족전선(民族戰線)이 하나로 통합되고 중·일(中日)간의 전쟁이 고조되자, 이에 영향을 받은 북미(北美)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에서는, 1940년 9월 미주와 하와이 각 단체 대표자들이 연석회의를 개최하여 시국대책을 강구할 것을 하와이 대한인국민회와 동지회에 제의하였다. 이에 따라 1941년 4월 20일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미국내 각 한인단체 대표들이 모여 해외한족대회(海外韓族大會)를 개최하고 그 회의의 결의에 따라 동년 8월 미주내 모든 단체들을 통합한 재미한족연합위원회(在美韓族聯合委員會)가 조직되고 하와이 호놀룰루에 재미한족연합위원회 의사부(議事部)가 설치되자, 의사부 위원으로 선임되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후원과 외교 및 선전사업을 추진하였다.
또한 1942년 5월 재미한족연합위원회에서 전체위원회를 열고 임시정부의 동의를 얻어 원동(遠東) 지역과 미주간의 장래 민족운동 정책에 관한 협정을 위해 중국 중경(重慶)으로 특파원 파견을 결정하자 김호(金乎)와 함께 중경특파원(重慶特派員)으로 택선되어 임무 수행을 명받았다. 그러나 이승만 계열이 이에 반대하고 1943년 9월 이승만의 지지세력인 동지회(同志會)가 재미한족연합위원회를 탈퇴하여 1944년 6월 독자적으로 외교위원부를 설치하여 활동하자, 재미한족연합위원회 또한 외교사무소(外交事務所)를 워싱턴에 개설하고 그를 외교원으로 선임하여 외교사무를 전개하도록 하였다. 이와 같은 사태에 대해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동년 8월 외교위원부를 새롭게 개조할 것을 명령하자, 그해 10월 로스엔젤레스에서 미국과 하와이의 17개 단체 중 동지회 계열의 4개를 제외한 13개 한인단체가 참석하여 대표회를 개최하였다. 이 대회에서 그는 새로 조직된 주미외교위원부(駐美外交委員部)의 외교위원장 비서로 선출되어 조국의 독립을 위한 외교활동을 전개하였다. 1945년 1월 미국 버지니아주 핫스프링에서 ipr(institute of pacific relations) 회의가 개최되자, 정한경(鄭翰景)·유일한(柳一韓) 등과 한국 대표로 참석하여 한국 독립의 당위성을 선전하였으며, 동년 4월 제2차 세계대전의 전후 평화를 준비하기 위해 연합국회의(聯合國會議)가 개최될 것을 안 재미한족연합위원회의 파견대표로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1945년 8월 조국이 광복되자, 1946년 1월 조국이 재건후원을 목적으로 구성된 재미한족국내파견대표단(在美韓族國內派遣代表團)의 외교위원으로 선임되어 고국을 떠나온 지 40여년 만에 조국을 땅에 밟게 되었다. 귀국 후 정치가들의 유혹을 멀리하고 올림픽대책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선임된 그는 한국이 런던 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는 모든 외교적 노력을 경주하였다. 그리하여 1947년 6월 ioc에서 한국올림픽위원회가 정식회원으로 승인되기 직전에 여운형(呂運亨)의 친서를 휴대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한국의 ioc 가입 정당성을 설득하는 등 왕성한 외교 활동을 전개하여 적극적인 협조를 받아내는 데 성공하였다. 이에 따라 1947년 5월 29일 스톡홀름에서 열리는 ioc 총회 한국대표로 참석하기 위해 미군용기를 타고 출발했던 그는 일본 후지산 부근에서 비행기 추락사고로 '불귀(不歸)의 객(客)'이 되고 말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국사편찬위원회) 제12권 672면
-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국사편찬위원회) 제13권 817·858면
- 임시정부의정원문서(국회도서관) 849-851면
- 포와조선인사정(재호놀룰루제국총영사관) 998·999면
- 발굴 한국현대사인물(한겨레신문사) 3권 107-114면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349·370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4권 67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