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3권(1996년 발간)
경기도 수원(水原) 사람이다.
1903년 2월 하와이로 노동이민을 간 뒤,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면서 기숙사를 설치하여 한인 노동자들의 거주지를 확보하는 한편, 한글·영어·수신(修身)·산술(算術) 등을 교수(敎授)하여 문맹퇴치운동과 자치활동을 전개해 나갔다. 그 후 1906년 미주 본토로 이주하여 임페리얼 밸리지역에서 벼농사를 짓다가 1920년 캘리포니아주 로스엔젤레스로 이주하였다.
이후 그는 이승만(李承晩)의 독립노선을 지지하며 1924년 9월 로스엔젤레스에서 안상학(安相學) 등과 더불어 나성한인교민단(羅城韓人僑民團)을 조직하고 군자금을 모집하여 워싱턴에 설치된 구미외교위원부(歐美外交委員部)에 송금하는 등 구미위원부의 외교활동 후원에 앞장섰다. 그 후 1929년 이승만이 로스엔젤레스로 와서 로스엔젤레스 동지회(同志會)를 결성하자 창립위원으로 선정되어 나성한인교민단을 해소하고 나성(羅城) 동지회를 조직하여 이승만의 활동을 적극 후원하였다.
1941년 4월 20일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미국내 각 한인단체 대표들이 모여 해외한족대회(海外韓族大會)를 개최한 데 이어 동년 8월 미주내 모든 단체들이 통합된 재미한족연합위원회(在美韓族聯合委員會)를 조직하자 동지회 회원으로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1943년 9월 이승만 계열이 재미한족연합위원회를 탈퇴하자 함께 탈퇴하여 나성동지회를 동지회 북미총회로 명칭을 변경하고 활동하였다. 그 후 1944년 6월에는 동지회 독자적으로 외교위원부를 설치하여 활동하는 등 이승만의 활동과 정치노선을 적극 후원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미주이민100년(민병용) 136면
- 국외용의조선인명부(총독부경무국) 304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8집 729·731면
- 재미한인50년사(김원용) 212·213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