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3권(1996년 발간)
서울 사람이다.
1903년 한국에서 하와이 사탕농장 노동자 모집시 응모하여 노동이민으로 하와이로 건너왔다. 1910년 7월 일제의 한국 강점이 현실화되자, 하와이 각 지방 대표자들과 함께 하와이 호놀룰루에 화합하여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 북미총회(北美總會)와 연서로 일본 왕에게 일제의 한국 강점을 강력히 반대하는 서한을 발송하였다.
그 후 1917년과 18년 2년에 걸쳐 대한인국민회 하와이 지방총회 총회장으로 선임되어 이승만(李承晩)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후원하는 한편, 1919년 11월 이승만을 따라 중국 상해로 건너가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총리 및 각 부 총장의 취임식에 참석하였으며, 1920년 임시정부 상임위원회 군무위원(軍務委員) 및 정무조사특별위원회(政務調査特別委員會) 외정분과(外政分科) 위원으로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그 후 1920년 4월 현순(玄楯)과 함께 상해로부터 프랑스를 거쳐 뉴욕에 도착하여 그 해 9월 하와이로 돌아왔다.
그 후 1921년 7월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후원을 목적으로 이승만 등과 함께 동지회(同志會)를 조직하였다. 또한 이듬해인 1922년 대한민국임시정부 교민단령(僑民團令)에 입각하여 대한인국민회를 하와이 대한인교민단(大韓人僑民團)으로 개편·조직하고 총무로 선임되어 이승만의 구미위원부(歐美委員部)활동을 후원하였으며, 1922년 당시 「국민보(國民報)」의 주필을 담당하여 이승만의 정치노선 선전에 힘을 기울였다.
1939년 중국의 한인독립운동단체인 광복진선(光復陣線)과 민족전선(民族戰線)이 하나로 통합되고 중·일(中日)간의 전쟁이 고조되자, 이에 영향을 받은 북미 대한인국민회에서는 1940년 9월 미주와 하와이 각 단체 대표자들이 연석회의를 개최하여 시국대책을 강구할 것을 하와이 대한인국민회와 동지회에 제의하였다. 이에 따라 1941년 4월 20일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미국내 각 한인단체 대표들이 모여 해외한족대회(海外韓族大會)를 개최하자, 동지회 중앙부(中央部) 대표로 참석한 그는 독립전선 통일문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봉대(奉戴)문제, 대미외교기관(對美外交機關)의 설치문제, 군사운동에 관한 문제, 미국 국방공작 후원문제, 연합기관 설치문제, 독립금 수봉문제 등을 결의하는 등 일평생 이승만의 후원자로서 활동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국외용의조선인명부(총독부경무국) 6면
- 조선민족운동년감 142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1권 분책 766면
-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국사편찬위원회) 제12권 671면
- 임시정부의정원문서(국회도서관) 73·74·92·93·103면
- 한국민족운동사료(중국편)(국회도서관) 10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182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4권 239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8집 508·510·519·523·709·723·834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9집 35·890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