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5권(2003년 발간)
1920년 3월 12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는 극동공산당(極東共産黨) 임시위원회의(臨時委員會議)를 개최하고 1) 극동의 주요지점에 있는 한인의 각 단체는 연합하여 특별한 배일기관을 조직할 것, 2) 배일기관의 조직은 우라소브, 라소브, 구베르만의 3명에게 위임한다 3) 한인혁명당들과의 연락은 동양학원(東洋學院 ; 블라디보스토크 東洋大學의 전신) 학생 우라세비치, 우츠킨의 두 사람에게 위임한다는 등 한인문제에 관한 3개항을 결의하였다. 이 결의에 이어 1920년 4월 1일에는 일본군의 중심지인 하바로브스크에서 볼세비키의 시위행진이 있었는데, 이 시위행렬에 한인 500 여 명이 가담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상황이 전개되자, 일본군은 볼세비키의 거점을 섬멸하고자 1920년 4월 4∼5일 밤중에 블라디보스토크를 비롯한 하바로브스크 등의 볼세비키 조직을 습격하는 한편, 부근 신한촌(新韓村)을 비롯한 한인 밀집지대를 기습하여 한인조직을 파괴하고 무차별 학살을 감행하는 이른바 4월참변(四月慘變)을 자행하였다. 이 4월참변으로 인해 하바로브스크에서는 하룻밤 동안 20명 이상의 한인독립군이 피살된 것을 포함하여 2,500명 이상이 살해되고 부상당하였다.
당시 니콜스크-우스리스크에서는 연해주(沿海州) 지방과 연흑룡강(沿黑龍江) 지방 노동자들의 회의가 개최되고 있었다. 이때 일본군이 이 도시를 점령하고 대회에 참석한 많은 대표위원들을 체포할 때, 김이직(金利稷)·엄주필(嚴周弼)·최재형(崔才亨) 등과 함께 일본군에 의해 붙잡혀 4월 7일 일본헌병대의 압송 중 탈출을 감행하였으나 일본군에 의해 총살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韓國共産主義運動史(1)(김준엽·김창순) 126·127面
- 東亞日報(1920. 5. 9)
- 蘇聯韓族史(정태수 편역) 113面(극동중앙문서보관국 fund R.919, inventory 1, house 18, sheet 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