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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공자정보

수형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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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한자 李發
이명 李承喬, 李撥 성별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본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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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정보

수형기록
운동계열 만주방면 포상년도 1995 훈격 애국장
이동휘(李東輝)실부(實父)로 1919. 3. 1 블라디보스톡에서 대한국민의회(大韓國民議會)의 외각단체로 노인단(老人團)을 결성하고 동년(同年) 5월 31일 입경(入京)하여 종로 등지에서 태극기를 흔들고 자살을 기도하며 만세시위 운동(萬歲示威運動)을 전개하였고 1920. 3. 1에는 블라디보스톡에서 독립선언 기념회(獨立宣言紀念會)회장(會長)으로 활동하였으며 신한촌(新韓村)에서 일군(日軍)피체(被逮)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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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3권(1996년 발간)

함남 단천(端川) 사람이다.

이동휘(李東輝)의 실부(實父)로서 빈궁한 농민으로 출생하였다. 1902년 이동휘(李東輝)가 강화도 진위대장으로 근무하게 되자 서울로 이사오게 되었으며, 서울에서 보성각에 취직하여 새로 창립되는 신학교들의 한문교과서를 친히 편집 발행하였다. 아울러 대한매일신보의 직원으로 일하기도 하였다.

1910년 이후 며느리인 이동휘의 부인 강정혜와 셋째 손녀 이경순, 손자 이우석 등과 함께 훈춘(琿春)에 살았으며, 1915년에는 이동휘의 의견에 따라 왕청현(汪淸縣) 하마탕의 조선인 촌락에 거주하였다. 1917년 늦은 봄에 목릉현(穆稜縣) 팔면통(八面通)에 이주하였다가 그 후 다시 1918년에 블라디보스톡으로 이주하여 거주하였다.

1919년 3·1운동 이후 블라디보스톡에서 46세 이상의 남녀를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원조할 목적으로 김치보(金致寶)·윤여옥(尹餘玉) 등과 함께 노인단(老人團)을 조직하였다. 그리고 노인단의 비밀회의에서 자신의 결심의지를 다음과 같이 발표하였다.

나는 지금 70이 가까운 노인으로 죽는 것이 두렵지 않으며, 우리 나라에서 일어난 독립운동과 우리민족의 애국심을 더욱 고취시키기 위하여 조선 내지에 나가서 다시 한번 더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민중을 격동시키며, 애국심을 고취하는 선동, 선전하는 선포문을 민중 대중 속에 선포하겠다.

이에 노인단에서 찬동하여 이름을 이발로 고치고 서울로 향하였다. 1919년 5월 31일 아침 동지 4명과 함께 노인단의 대표로 경성에 가 종로동 보신각(寶信閣) 앞에서 각자 휴대했던 태극기를 휘두르며 만세를 불렀다. 그리고 그는 작은 칼로 자기의 목을 찔러 자살을 기도하자 일경은 이발 외 2명을 간곡히 설유하여 귀환케 하였다.

1920년 3월 1일 블라디보스톡에서 대한국민회 주최로 독립선언 기념축하식을 개최하고자 할 때 회장으로 선정되었으며, 부회장은 김식(金軾), 의식부장에 장도정(張道政), 경찰부장에 김필수(金弼秀), 재무부장에 김치보, 접대부장에 미하일 김 등이었다. 그는 3월 1일의 행사시 배포된 인쇄물에 이발의 호소를 게재하였으며 재러동포들의 민족의식 고취에 진력하였다.

이처럼 노구에도 불구하고 활발히 독립운동을 전개하자 일제는 1920년 어느 날 새벽 1개소대를 파견하여 그를 체포하였다. 그 후 그는 석방되어 동년 둘째 손녀 의순과 함께 상해로 이사하였다가 1923년 이동휘가 블라디보스톡으로 이동할 때 함께 다시 블라디보스톡으로 이동하였다.

1928년 4월 20일 블라디보스톡에서 77세의 나이로 아들 이동휘 앞에서 숨을 거두었다. 사망시 대한독립만세를 유서로 남겼으며, 이 유서는 선봉신문 1928년 5월 6일자에 게재되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1권 분책 116·298면
  • 한국학연구(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1993. 70 제5집 별집, 리동휘 성재선생(리영일) 174·184·188·204·207·289∼290·291∼293·306면
  • 선봉(1928. 5. 6)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1집 83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4권 194면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제4권 399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2권 824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3권 463면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도움말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순번 성명 이명 출신지 관련사건
1 이발 이승교(李承喬)·이발(李撥) 함남 단천(端川) 신한촌 만세운동, 서울 만세운동
본문
함경남도 단천군(端川郡) 단천면(端川面) 대성리(大城里)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851년생으로 보인다. 본관은 하빈(河濱)이며, 이명으로 이승교(李承橋)와 한자가 다른 이발(李撥)을 사용하였다. 독립운동가 이동휘(李東輝)의 부친이다. 1910년 국권을 일본에게 온전히 빼앗기자 비분강개하면서 일제의 지배를 거부하고 가족들과 함께 중국 간도 지역으로 이주하였다.1918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이주한 후 민족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에 관하여 고민하였다. 그러던 중 1919년 국내에서 전국적으로 전개된 만세운동이 국외로 확산되어, 그 해 3월 17일 거주하는 신한촌에서도 만세시위가 발생하자 시위대의 선봉에 서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이후 만세운동의 열기가 남아있던 3월 26일 대한국민의회 의원인 김치보(金致寶)가 운영하는 한약방에서 평소 뜻을 나누던 여러 사람들과 모여 만세운동에 있어 우리가 뒷방 신세로 머물러선 안 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이 자리에서 ‘청년 자제들이 모두 독립을 위해 피를 흘리고 있는데 늙은이라고 이 일을 할 수 없으랴’라는 생각으로 대한국민노인동맹단(大韓國民老人同盟團)이 창설되자 그 즉시 조직에 가입하였다.독립운동 최전선에 나선 청년들을 지원할 목적으로 조직된 대한국민노인동맹단은 회원의 나이를 46~70세까지로 제한한 것이 특징이었다. 단장 김치보, 총무 김순약(金舜若), 의장 이일(李逸), 서기 서상구(徐相矩) 등이 선임되어 집행부가 구성되었으며, 이들은 전단위원을 선발하여 각 지역에 파견함으로써 단원 모집에 힘썼다. 동지 규합과 자금 모금을 목적으로 활동을 전개하던 노인단은 후방에서 청년들을 지원하는 역할에 그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직접적인 행동에도 적극 나서기도 하였다.노인단은 침체되어 가는 만세운동의 열기를 살려냄으로써 다시 한번 국내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하여 사람들의 독립 정신을 고취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자 “나는 지금 칠십이 가까운 노인으로 죽는 것이 두렵지 않다. 조선에 나가 다시 한 번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며, 애국심을 고취할 수 있는 선포문을 대중 속에 알리겠다”라고 말하고 스스로 지원하였다.1919년 5월 5일 정치윤(鄭致允)·윤여옥(尹餘玉)·안태순(安泰純) 등 단원들과 함께 블라디보스토크를 떠나 5월 31일 서울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같은 날 오전 11시경 종로 보신각 앞에서 군중 연설을 마친 뒤 가슴에 숨겨 둔 태극기를 꺼내어 흔들면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다가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이때 “의(義)로서 치욕을 당하지 않겠다”라고 말하고 칼로 자신의 목을 찔러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시도하였으나 일제 경찰이 말려 실패하였다. 연로한 까닭으로 처벌을 면하였으나, 이 사건으로 인해 강제 추방되었다.이후 1920년 3월 1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대한국민회 주최로 독립선언 기념축하식이 개최되었을 때 회장으로 선임되어 활동하는 등 한인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하기 위한 활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하다가 일제 경찰에 다시 붙잡히기도 하였다.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묘소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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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번 종류 시설명 소재지
1 장소 보신각 3·1독립운동 기념터 서울특별시 종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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