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3권(1996년 발간)
함북 사람이다.
구한말에 러시아 연해주(沿海州)로 건너가 상업에 종사하였으며, 1910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최재형(崔在亨)과 함께 독립운동을 전개하였고, 특히 일반청년들의 민족의식 고취에 노력하였다. 1917년 러시아혁명 이후 1918년에는 민단장(民團長)에 선출되어 재러동포사회를 위하여 적극 노력하였다.
1917년 러시아혁명 이후 1918년부터 러시아 연해주 지역에 일본군대가 파견되어 러시아 백파를 지원하자 한인독립운동 세력들은 블라디보스톡 신한촌(新韓村)을 중심으로 일제에 대항하였다. 이에 일제는 1920년 4월 5일 신한촌을 포위하고 한인들에게 일제히 사격을 가하였다. 이 때 많은 한인들이 살해당하였으며, 300여 명의 주민들이 체포당하였다. 일본군들은 체포된 사람들을 학교에 가두고 그 건물을 불태워 죽였다.
일본군의 이러한 만행은 니콜스크 우수리스크에서도 행해졌다. 당시 니콜스크에서는 대한국민의회·노인단·상해 임시정부 군무부지부·독립단·임시위생회 등이 활동하고 있었고, 특히 1920년 3월에는 대한국민의회가 본부를 이 지방으로 이전하였다. 그리고 이 지역에서는 상해 임시정부 재무총장이었던 최재형이 김이직(金理直)·황경섭(黃景燮)·엄주필 등과 함께 재러동포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한편, 일본 수비대를 공격하였다. 이에 일본군은 블라디보스톡에서의 신한촌 공격에 이어 니콜스크에서 일본현병들이 파견보병대의 원조를 얻어 4월 5일, 6일 양일에 걸쳐서 동지역에 있는 독립운동가의 집을 수색하고 엄주필 이하 78명을 체포하여 취조하였다. 당시 체포된 대표적인 인물로는 엄주필 이외에 최재형·김이직·황경섭 등을 들 수 있다. 일본군은 체포한 78명 중 엄주필 등 4명만 남기고 다른 사람들은 석방하였다.
엄주필 등은 1920년 4월 7일 동지역 주둔 흑룡헌병대본부(黑龍憲兵隊本部)와 니콜스크 헌병분대(憲兵分隊)가 부대의 건물을 옮기자 오후 6시경 호송 중 감수인(監守人)의 틈을 엿보아 탈출을 시도하였으나 일본군의 추적으로 피살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4권 116면
- 독립신문(1920. 5. 15)
- 동아일보(1920. 5. 8, 5. 9)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1권 634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5권 78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3권 482·495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188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3권 769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