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함북 경흥(慶興) 사람이다.
만주와 노령(露領)에서 독립군 지도자로 활약하였다.
1910년 일제의 조선 강점 이후 부모와 함께 만주로 이주하였다. 1919년 3월 28일 중국 훈춘(琿春)에서 조선인 4,000명이 참석한 가운데 이하영(李河英) 등과 함께 독립에 관한 연설을 하여 동포들의 민족의식 고취에 크게 기여하였다. 이후 동포들로부터 군자금을 모집하거나 같은 해 김규면(金圭冕)이 지도한 신민단(新民團)에 참여하였으며 문창범, 이동휘(李東輝) 등의 지휘아래 의용병에 가담하여 활동하기도 하였다.
1921년에는 노령 연해주(沿海州) 추풍(秋豊) 당어현동(唐於峴洞)의 솔밭관 한족공산당(韓族共産黨)에 참여하여 산하 우리동무군을 지휘하여 러시아 적군(赤軍)과 함께 백군(白軍) 및 일본군과 격전을 벌였다. 1922년 3월에는 솔밭관 한족공산당의 무장부대인 우리동무군의 사령부장으로서 총사령관 최추송, 참모부장 최성삼 등과 함께 활동하였다.
1922년에는 고려혁명군(高麗革命軍) 연해주 총지부의 서부사령관으로 활동하였다. 한편 한국내 관헌의 동정을 살피기 위하여 50세 이상 60세까지의 노인으로써 노인대를 조직하여 활동하기도 하였다. 또한 같은 해 6월 200여 명의 일본군과 전투를 벌여 40여명을 섬멸했다. 그후 그의 부대는 그로제꼬보와 한까 구역에서 활동하였다.
1922년 10월 25일 연해주 주둔 일본군의 철수와 동시에 연해주에서는 백군과 적군간에 내전이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이때 신우여부대도 적군 편에 서서 그라데꼬보와 흥개호 일원 전투에 참전했다.
1922년 말 소련이 한인무장부대를 무장해제하자 연추로 가 가족들과 상봉하였으나 병에 걸려 곧 사망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9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現代史資料(姜德相) 第26卷 128·209·241·256面
- 일제하 극동 시베리아의 한인 사회주의자들(마뜨베이 김, 1990) 179·180面
- 연해주 솔밭관 한족공산당에 관한 일고찰(林京錫, 趙東杰先生停年紀念韓國民族運動史硏究, 1997) 684∼722面
- 재소한인의 항일투쟁과 수난사(박환, 1997) 118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5卷 421面
- 朝鮮獨立運動(金正明) 第2卷 790面
- 한국사회주의운동인명사전(강만길·성대경) 255面
- 연해주 솔밭관 고려혁명군실기(이중집, 십월혁명 십주년과 쏘베트고려민족, 10월혁명10주년원동기념준비위원회, 1927) 64·68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3卷 790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9輯 826·827面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