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1919년부터 북간도 최대 독립운동 단체인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 남부지방 회장으로 활동하였다.
1919년 3·1운동 후 대한민국임시정부 직할의 독립운동기관임을 밝히며 출발한 대한국민회는 성립 초기 본부를 연길현 춘양향(春陽鄕) 합마당(蛤蟆塘)에 두고 그 아래 동·서·남·북·중의 5개 지방회와 70여 개에 달하는 지회(支會)를 두었다. 1920년에 대한국민회는 합마당 이외 의란구(依蘭溝)에도 총부(總部)를 두었고, 그 아래 민정기관인 8개의 지방회와 130여 개의 지회를 설치해 북간도 이주 한인사회를 총괄하며 독립운동을 펼쳤다. 마용하는 화룡현(和龍縣) 지신사(智新社)에 설치된 남부지방 회장에 선임되어 군자금을 모금하는 한편 항일활동을 펼쳤다.
1920년 10월 청산리대첩 후 북간도지역에 근거지를 가졌던 대부분의 독립군 단체들은 일제의 공격을 피해 북만주로 근거지를 이동하였다. 대한국민회도 1921년 8월경에는 돈화(敦化)와 액목현(額穆縣) 방면으로 이동해 근거지를 구축하였다. 이후 국민회는 돈화에 주둔하는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 일부와 연합해 간민국(墾民局)을 만들었다가 무장력을 증강시켜 독립군 총합부(總合部)라는 이름으로 확대 조직하였다. 마용하는 이 총합부의 역원(役員)이 되어 활동하였다. 거의 같은 시기 서간도에서 활동하다가 청산리대첩 후 북만주로 이동한 대한독립군비단과 대한국민회 군사부가 합병하여 대한의용군사회(大韓義勇軍事會)라는 조직체를 만들었을 때는 집행위원으로도 활동하였다. 1922년 8월에는 북만주에 근거지를 가진 여러 독립운동단체들이 통합해 고려군중앙정청(高麗軍中央政廳)을 조직하기 위한 회의를 개최할 때는 액목현의 대표로 참가하였다. 그리고 1923년 말부터는 돈화와 영안현(寧安縣) 등에 근거지를 두고 활발한 무장활동을 전개한 적기단(赤旗團)의 통신부원 및 재무부장으로 활동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不逞鮮人 行動에 관한 건(1919. 11. 13) 不逞團關係雜件 - 朝鮮人의 部 - 在滿洲의 部(13)
- 間島接壤地方에 있어서 不逞鮮人團의 動靜(1921. 10. 26) 不逞團關係雜件 - 朝鮮人의 部 - 在滿洲의 部(30)
- 敦化縣에 있어서 不逞鮮人團의 組織(1921. 12. 15) 不逞團關係雜件 - 朝鮮人의 部 - 在滿洲의 部(30)
- 間島地方 不逞鮮人團體의 武力 準備狀況과 首腦者의 所在地 調査表(1920. 6. 16) 不逞團關係雜件 - 朝鮮人의 部- 在西比利亞(10)
- 敦化縣 에 있어서 不逞鮮人團의 團體組織의 건(1921. 11. 25) 不逞團關係雜件 - 朝鮮人의 部 - 在滿洲의 部(30)
- 間島 및 同接壤地方에서 排日團體 및 親日團體 調査의 件(1922. 2. 28) 不逞團關係雜件 - 朝鮮人의 部 - 在滿洲의 部(32)
- 露領 高麗軍中央政廳 組織說에 관한 건(1922. 8. 9) 不逞團關係雜件 - 朝鮮人의 部 - 在西比利亞의 部(13)
- 間島 및 接壤 露支領에 있어서 不逞鮮人團의 近況에 관한 件(1924. 1. 25) 不逞團關係雜件 - 朝鮮人의 部 - 在滿洲의 部(38)
- 露支領 不逞鮮人의 행동에 관한 件(1924. 4. 18) 不逞團關係雜件 - 朝鮮人의 部 - 在滿洲의 部(38)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7집 1316면, 제9집 762면, 제10집 286면
- 朝鮮獨立運動(金正明, 1967) 제2권 1022면
- 日帝侵略下韓國36年史(國史編纂委員會) 제6권 361면, 387면
- 北間島지역 獨立軍團名簿(국가보훈처, 1997) 130면
- 獨立運動史料(국가보훈처) 중국편 제1권 52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