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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공자정보

수형기록
관리번호 3952
성명
한자 玄道明
이명 없음 성별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본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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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정보

수형기록
운동계열 미주방면 포상년도 1997 훈격 애족장
1932.2월 하와이에서 임성우(林成雨) 등과 함께 애국단을 설립하여 상해(上海) 임시정부(臨時政府)를 후원하였고 1940년에는 하와이애국단의 후신으로 한국독립당 하와이지부를 설립, 동 지부(同支部) 집행위원장, 원동의 특무공작과 한국광복군 편성의 경제적 후원을 하였으며 1941. 4월 재미한족연합위원회 하와이지방의원으로 활동하는 외에 1937년~1945.3월까지 독립금을 여러차례 헌납하는 등 13년여에 걸친 활동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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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경기도 개성(開城) 사람이다.

미국 하와이로 이주하여 애국단 등에 참여, 독립운동 지원활동을 벌였다.

현도명은 오운(吳雲)·최선주(崔善宙)·이보국(李輔國) 등과 함께 1925년 4월 하와이에서 제1세 동포와 미주에서 출생한 제2세 동포간의 상업과 사교를 장려하기 위한 조미구락부(朝美俱樂部)를 조직하였다.

그리고 1930년 하와이 사회풍파의 시비가 각 방면에 파급되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대한 재정 후원이 미약하였지만, 현도명과 임성우는 와이아와 지역의 동지들과 파쟁에 중립을 유지하며 계속해서 임시정부를 지원하였다. 1931년 9월 김구가 계획하고 있던 특무공작에 찬성하고 같은 해 11월 15일에 1,000달러를 송금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 독립자금은 이봉창(李奉昌)·윤봉길(尹奉吉) 등의 거사비용으로 쓰여졌다. 이어 1932년 2월 이러한 그들의 비밀결사가 알려지면서 현도명과 임성우 등은 애국단(愛國團)을 조직하였다.

그후 그는 1940년 5월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 하와이 지부 집행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애국단이 중국지역의 항일전선통일운동에 참가하여 한국독립당을 결성함에 따라 하와이에 지부가 만들어졌던 것이다. 그는 하와이 한국독립당 지부를 이끌어 가며, 중국지역의 특무공작과 한국광복군 편성에 경제적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1941년 4월 해외한족대회에 한국독립당 하와이 지부대표로 참석, 재미한족연합위원회(在美韓族聯合委員會)의 하와이 지방의원으로 선임되어 한인사회의 단결과 독립운동지원에 힘썼다.

한편, 그는 1937년부터 1945년 광복때까지 여러 차례 독립자금을 헌납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7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在美韓人50年史(金元容, 1959) 215·216·219·292·410∼412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8輯 731·734·772·835面
  • 國民報(1937. 10. 27, 11. 17, 1938. 6. 1, 8. 10, 1944. 5. 5, 1945. 2. 14, 3. 21)
  • 국민보-태평양주보(1942. 3. 25, 5. 20)
  • 日帝侵略下韓國36年史(國史編纂委員會) 第12卷 672面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도움말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순번 성명 이명 출신지 관련사건
1 현도명 - 경기 개성(開城) -
본문
1883년 2월 24일 경기도 개성부(開城府) 송도(松島)에서 태어났다. 자료 부족으로 성장과정과 미국으로 건너간 배경은 알 수 없다. 1913~14년 하와이 부네네지방회 경찰원·회장, 1925년 조미구락부, 1932년 하와이 애국단, 1940~44년 한국독립당 하와이지부, 1941년 해외한족대회 하와이지방위원을 역임하며, 한국독립운동에 기여하였다. 1909년 2월 하와이 한인합성협회와 북미 공립협회가 통합하여 국민회를 창립한 뒤, 한인합성협회는 하와이지방총회로 개편되었다. 1913년 10월 하와이지방총회 부네네지방회 산하에 경찰소가 신설되자, 초대 경찰원으로 임명되었다. 1914년에는 동(同) 지회 회장으로 선출되어 활동하였다. 1925년 4월 오하우 와이아와지방에서 오운(吳雲)·최선주(崔善周)·이보국(李輔國)·송승균(宋承均)·서진수 등과 함께 조미구락부(朝美俱樂部)를 설립하였다. 설립 목적은 미주한인 1·2세간의 사교 및 상업 장려에 있었으나, 궁극적으로는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던 독립운동가들에게 운동자금을 제공하는 데 있었다. 1932년 2월 14일 와이아와에서 임성우(林成雨)·김경옥(金敬玉)·김예준(金禮俊)·김성옥(金成玉)·김태정(金泰正)·김형기(金� 基)·김기순(金基淳) 등과 함께 하와이 애국단을 설립하고 재무로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하외이 애국단을 조직할 당시 독립운동에 대한 열기가 식어가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대한 재정적인 후원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던 시기였다. 하와이 애국단에서 활동하면서 임시정부 김구(金九)와 지속적인 연락을 취하면서 임시정부 재정 지원에 노력하였다. 1931년 9월 김구가 구상하고 있던 특무공작에 동의하여 11월 15일에는 1,000달러를 모집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보냈다. 이 독립운동 자금은 훗날 이봉창·윤봉길 의거의 경비로 사용되었다. 1938년 하와이지방총회 와이아와지방회 학무원으로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1942~44년 와이아와지방회 회장으로 선출되어 한인들을 대상으로 독립의식을 고취시켰으며, 독립운동 자금 모집을 적극 추진하였다. 1940년 5월 9일 하와이 오아후 와이아와에서 임성우·김예준·위태은(韋泰殷)·안창호(安昌鎬, 도산 안창호와 동명이인)·김광호(金光浩)·김상원(金相元)·한경선(韓慶善)·한학신(韓學信)·선우혁(鮮于赫) 등과 함께 하외이 애국단의 후신인 한국독립당 하와이지부를 조직하였다. 1944년 조직을 행정부·평의부·고문부 등으로 개편할 때, 집행부 부위원장으로 선임되어 활동하였다. 1941년 4월 21일 북미와 하와이의 대한인국민회·동지회·중한민중동맹단·대조선독립단 등 단체들이 하와이 호놀룰루에 모여 독립전선의 통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봉대(奉戴), 군사운동 후원, 미국 국방공작 지원 등을 논의하기 위해 해외한족대회(海外韓族大會)대회를 열자, 한국독립당 하와이지부원의 자격으로 참여하였다. 이 대회에서 김재한·김예준·김국경·이봉수 등과 함께 하와이지방위원으로 선임되어 5월 1일까지 회의를 주재하였다. 이 시기 임시정부 등 한국독립운동에 필요한 자금 지원에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앞장섰으며, 30여 년간 ‘독립금’과 ‘특연금’이란 명목으로 수많은 독립운동자금을 후원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묘소정보

도움말
묘소정보 1
묘소구분 소재지
국외소재 미국 하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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