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 10월
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1916년 캐나다장로회 소속으로 한국에 왔다.
1919년 3월 13일 용정에서 한인들이 독립선언식을 갖고 만세시위를 했다. 중국군이 출동하여 시위대를 향하여 발포했다. 많은 사상자가 나왔다. 기수 박문호(朴文浩)를 비롯한 13명이 현장에서 총에 맞아 사망했다. 치명상을 입은 4명은 병원으로 옮겨 치료받던 중 사망했으며, 중상자 18명을 비롯한 30여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이들 사상자들은 모두 캐나다장로회 선교부의 선교병원인 제창병원으로 옮겨졌다.
한국독립운동에 호의적이었던 병원장 마틴은 사망자의 시체는 병원 지하실에 안치하게 했다. 의료진과 함께 부상자들을 정성껏 치료해 주고, 사망자들을 위한 합동 장례까지 치러주었다. 그는 그 후에도 제창병원과 그 부속건물들을 자주 독립운동을 모의하기 위한 독립운동가들의 집회장소와 숙박소로 제공해 주었다. 여기서 독립사상을 고취하기 위한 각종 문서들이 등사판으로 인쇄되어 배포되었다.
이러한 그의 한국독립운동 지원에 감사하여 간도 대한국민회는 1920년 2월 이를 표창하는 기념패를 제작하여 그에게 수여하였다. 1920년 10월 간도를 침공한 일본군에 의한 경신참변이 일어났다. 마틴은 일본군의 협박과 방해에도 불구하고 그 병원 간호사와 함께 1920년 10월 말경 일본군의 방화 학살 현장을 방문하여 사진을 촬영했다. 이때의 견문을 바탕으로 ‘노루바위(장암동) 학살 사건’이라는 보고서를 만들어 일본군의 학살 만행의 진상을 폭로하였다.
1927년까지 제창병원 원장으로 있었다. 그해 서울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교수 겸 부속병원 의사로 임명되어 임지를 서울로 옮겼다. 이곳에서도 흉부외과 과장과 세브란스결핵병방지회장을 맡아 한국인 특히 청년층의 고질병인 폐결핵의 퇴치에 힘썼다.
1940년 가을 일본과 미국 사이에 전운이 감돌왔다. 미국과 영국 영사관은 선교사들 특히 여성과 아이들의 철수를 강력하게 권고했다. 미국 정부는 자국민 철수를 위해 마리포사(The Mariposa)호를 인천항에 보냈다. 11월 16일 대부분 선교사와 그 가족들로 이루어진 219명이 이 배를 타고 한국을 떠났다. 캐나다 국적인 그도 부인과 함께 이 배에 승선할 수 있었다. 이는 그의 부인이 미국인이었기 때문이었다. 1941년 미국 버지니아주 리치몬드(Richmond)에서 별세하였다.
정부는 1968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PEKING&TIENTSIN TIMES(1920. 12. 9)
- 한국민족운동사료(韓國民族運動史料)(국회도서관, 1977) 제3권 46~47, 531~532면
- 간도(間島) 및 혼춘지방(琿春地方) 재주(在住) 조선인(朝鮮人)과 야소교(耶蘇敎)의 관계(조선총독부 경무국:1920. 3)
- 한국독립운동사자료(韓國獨立運動史資料)(국사편찬위원회, 2007) 제43권 464면
- 야소교장로파(耶蘇敎長老派) 부속(附屬) 병원장(病院長)에 대(對)해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로부터 기념패증정에 관한 건(국자가 분관주임:1920. 12. 18)
- 간도출동(間島出動) 제국군대(帝國軍隊)의 행동에 대한 비난변박재료(非難辯駁材料) 취조(取調)에 관한 건(외무차관:1921. 2. 5)
- 조선독립운동(朝鮮獨立運動)(김정명, 1967) 제2권 1039면
- 일본(日本)의 한국침략사료총서(韓國侵略史料叢書)(한국출판문화원, 1990) 제29권 127면
- 한국사(국사편찬위원회, 2001) 제48권 245면

